그 회사를 마지막으로 걸어 나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오후 여섯 시, 성수동 어느 골목. 손에는 서류봉투 하나, 가슴에는 “이게 맞는 건가”라는 물음 하나. 버스를 타야 하는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서른넷이었다. 20대를 고스란히 직장에 바쳤고,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주변에서는 “이 나이에 또 이직이야?”라고 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왔다.
돌이켜보면, 그 결정이 내 커리어의 진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경력’이라는 말이 있다. 햇수는 쌓이지만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간. 나는 그 함정을 하마터면 고스란히 밟을 뻔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비슷한 기로에 서 있을지 모른다.
경험 속에서 발견한 문제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이력서가 비어 있었을까
그 회사에서 나는 분명히 바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했고, 상사가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해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린 적도 있었다. 팀원으로 참여했고, 내 역할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퇴사를 고민하며 이력서를 열어보니 쓸 수 있는 게 생각보다 없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긴 했지만, 내가 무엇을 결정했고 무엇을 바꿨는지가 불분명했다. 발주처의 요구가 바뀌면 그냥 따랐고, 반복되는 업무 방식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이력서 위에서는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참여와 기여는 달랐다. 그 차이를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왜 이 상황은 반복되는가
그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발주처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에서는 실무자가 아무리 문제를 발견해도, 의사결정의 주도권이 항상 외부에 있다. 내부에서 무언가를 바꾸려 해도 “원래 이렇게 해왔다”, “발주처가 원하는 방식이다”라는 말 앞에서 아이디어는 자꾸 접혀버린다. 그 안에서 수년을 보내면 어느 순간 제안하는 능력 자체가 둔해진다.
문제는 그 안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바쁘고, 프로젝트는 돌아가고, 어쨌든 월급은 나온다. 이직을 고민하기엔 일이 너무 많고, 버티다 보면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된다. 그사이 이력서는 점점 더 얇아진다.
나는 그 패턴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 그리고 그 늦음의 대가를 몸으로 치렀다.
시행착오가 알려준 것들
퇴사 후에야 보인 것들
막상 나온 뒤에는 막막했다. 다음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데, 면접 자리에서 “어떤 성과를 내셨나요?”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건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당신이 무엇을 바꿨나요?”라는 후속 질문 앞에서 말이 막혔다.
발주처의 요구사항이 바뀔 때마다 팀 내부가 혼란스러웠던 기억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혼란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제안한 적이 없었다. 반복되는 프로세스가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개선하겠다고 나선 적이 없었다. 문제를 발견했지만 기여로 연결하지 못한 시간들. 그것이 나의 공백이었다.
이력서를 고치고 또 고쳤지만, 업무 내용을 아무리 포장해봐도 결국 알맹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침묵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커리어의 본질
커리어는 직함이 아니라 이야기다. 면접관이 듣고 싶은 건 어느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는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슨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험’이 아니라 ‘기여’가 필요하다. 단순히 자리를 지키는 것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차이가 직급이나 연차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발주처의 요구가 바뀔 때마다 팀이 혼란스러워하는 구조를 발견하고, 커뮤니케이션 흐름을 정리하는 문서 하나를 만들어 공유한 사람. 반복되는 업무 방식에서 불필요한 단계를 발견하고 조용히 개선안을 올린 사람. 이런 사람은 직급에 상관없이 이미 커리어를 쌓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10년을 일해도 주어진 일만 처리하고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았다면, 그 10년은 이력서 위에서는 생각보다 얇게 느껴진다. 그것이 물경력의 진짜 정체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기여의 문제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향
지금 있는 자리에서 커리어를 만드는 법
퇴사가 정답은 아니다. 나는 나왔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커리어를 만드는 방법은 있다.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것은, 지금 반복되는 불편함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다. 발주처의 요구사항이 바뀔 때마다 팀 내에서 같은 혼선이 반복된다면, 그 흐름을 정리한 간단한 프로세스를 제안해보는 것. 누구도 정리하지 않은 내용을 한 장짜리 문서로 만들어 공유하는 것.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를 발견하고 행동으로 연결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
두 번째는, 그 과정을 기록하는 습관이다.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접근했고,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숫자가 있으면 더 좋고, 없어도 괜찮다. 이 기록이 나중에 이력서가 되고, 면접 답변이 된다. 나는 이 습관을 너무 늦게 들였다. 그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 있다.
세 번째는, 지금 회사가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6개월에 한 번이어도 좋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6개월 뒤 이력서에 새로 쓸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답이 계속 없다면, 그건 신호다.
오늘도 이 도시에서 커리어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쩌면 지금 당신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불안한 이유를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야근도 하고, 성실하게 버티고 있는데 왜 이력서가 채워지지 않는 건지. 성실함과 커리어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아직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 수 있다.
당시의 나는 그 차이를 서른넷이 되어서야 겨우 알았다. 하지만 그 늦음이 결국 더 명확한 방향을 만들어줬다는 것도 안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질문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커리어는 화려한 직함에서 오지 않는다. 문제를 발견하고, 기여로 연결한 작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이야기에서 온다. 그 이야기를 지금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오늘부터 한 줄씩 써 내려가기를 바란다.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꿨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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