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는 문을 열어둔 채 외출했다.
3층 빌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옥탑방 생활을 접고 처음으로 ‘층’이 있는 건물에 살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제법 뿌듯했던 시절이었다. 그 뿌듯함이 방심이 됐는지, 환기나 시킬 요량으로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갔다. 서울 여름 하늘은 예고 없이 무너진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퇴근길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 입구부터 물기가 번져 있었다. 소나기가 열린 문 안으로 그대로 쏟아진 것이었다. 벽지는 아랫단부터 불어 있었고, 모서리 쪽은 이미 너덜거렸다.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잠깐 보러 오시더니 짧게 말씀하셨다. “총각이 도배 한번 해봐요. 재료 사는 건 내가 댈게.”
그게 셀프 인테리어의 시작이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셀프 인테리어의 맨얼굴
유튜브 10분과 현실 10시간의 간극
유튜브에 ‘셀프 도배’를 검색하면 영상이 수두룩했다. 풀 바르고, 재단하고, 밀어주면 되는 것처럼 보였다. 화면 속 작업자들은 하나같이 능숙했고, 댓글에는 “생각보다 쉬워요”라는 말이 가득했다. 그걸 믿었다. 영상을 두세 개 돌려보고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다.
막상 도구를 사서 방으로 들어섰을 때, 자신이 있었다.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풀을 벽지에 바르는 순간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합지 벽지는 풀을 먹자마자 늘어났다. 일정하게 바른다고 했는데 한쪽이 두꺼웠고, 두꺼운 쪽은 마르면서 주름이 잡혔다. 풀 냄새와 씨름하며 간신히 첫 장을 벽에 붙였더니, 이번엔 기포가 여기저기 올라왔다. 손으로 밀어도, 수건으로 눌러도 없어지질 않았다.
혼자였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벽지 한 장을 붙이려면 한 손으로 위를 잡고 한 손으로 아래를 펴야 했는데, 그 사이에 중간이 벽에 먼저 달라붙어 버렸다. 떼어내려고 하면 벽지가 찢어졌다. 그날 저녁, 방 한쪽 벽면에 붙은 벽지는 사선으로 기울어진 채 마감됐다. 원래 벽지보다 더 보기 싫었다.
왜 이런 실수가 반복됐을까
그 이후로도 나는 몇 차례 셀프 인테리어를 시도했다. 커튼봉을 달았고, 방등을 교체했고, 나중에 오피스텔로 이사할 때는 작은 선반을 직접 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번번이 비슷한 패턴으로 실망을 맛봤다.
돌이켜보면 이유가 있었다. 나는 항상 완성된 결과물만 머릿속에 그렸다. 깔끔하게 붙은 벽지, 반듯하게 달린 선반. 그 이미지만 보면서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어떤 공구가 있어야 하는지,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인지, 실패했을 때 수습이 가능한지. 그런 질문들을 다 건너뛰고 일단 시작했다.
그건 아마 20대의 조급함이기도 했다. 빨리 바꾸고 싶었고, 빨리 나아지고 싶었다. 준비보다 실행이 미덕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 시절 내가 삶의 많은 부분에서 반복하던 습관이기도 했다.
시행착오가 알려준 것들
내가 했던 실수와 그 대가
셀프 인테리어 실패 중 지금도 아찔하게 기억나는 건 조명 교체였다. 빌라에서 오피스텔로 이사한 뒤, 형광등을 새것으로 바꾸다가 차단기를 내리지 않은 채 전선을 건드렸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잘못 연결된 덕분에 새 형광등이 원래보다 더 어둡게 켜졌다. 나중에 전기 쪽에 밝은 선배가 와서 들여다보더니 한마디 했다. “이거 잘못됐으면 불 날 수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감각이 생겼다. 셀프로 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 벽지나 페인팅처럼 잘못돼도 다시 할 수 있는 작업과, 전기나 수도처럼 한번 잘못되면 돌이키기 어려운 작업은 처음부터 구분하고 들어가야 했다. 그 경계를 무시하면 결과물이 나빠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었다.
도구를 아꼈던 것도 두고두고 후회했다. 수평계 없이 눈대중으로 선반을 달았고, 도배 롤러 대신 헌 수건으로 기포를 밀었다. 그 결과는 매번 ‘아깝지만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장의 지출을 아끼려다가 작업 시간과 재료비를 두 배로 쓴 셈이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본질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그 시절 셀프 인테리어에 집착했던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보다, 그 방에서 사는 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를 바꾸고 싶었고, 가장 손쉽게 건드릴 수 있는 게 눈앞의 벽이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돌아보면 그 마음이 이해된다. 공간을 바꾸면 기분이 달라지고, 기분이 달라지면 삶도 조금 달라질 것 같은 느낌. 그게 완전히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순서를 자꾸 뒤집으려 했다. 내면의 막막함을 외부의 변화로 해소하려다 보니, 어설프게 마무리된 벽지 앞에서 더 허탈해지는 날이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 가운데서도 무언가 하나가 제대로 마무리된 날에는 방이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해냈다는 감각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 안에 뭔가가 있었다. 그걸 그때는 이름 붙이지 못했지만.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향
지금의 나라면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셀프 인테리어를 앞둔 누군가에게 한 가지만 말해줄 수 있다면 이것이다. 시작 전에 먼저 이 질문을 해보라. 잘못됐을 때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나?
벽에 페인트를 잘못 칠하면 다시 칠하면 된다. 선반이 삐뚤어지면 위치를 고치면 된다. 그런데 전선을 잘못 건드리거나, 방수 처리를 어설프게 하면 수습 비용이 처음부터 전문가를 부르는 것보다 몇 배로 불어난다. 원상복구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DIY 범위를 정하는 것, 이게 수많은 실패 끝에 내가 찾아낸 가장 실용적인 원칙이다.
도구에 인색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재료를 한 등급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도구만큼은 제대로 갖추는 편이 낫다. 당장은 지출처럼 보이지만, 실패 횟수와 재작업 시간을 줄이는 데 있어 도구만큼 확실한 투자가 없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의 범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몇 년 전, 지금 사는 집 서재에 붙박이 선반을 달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건 목수 한번 부르자.” 20년 전의 나였다면 절대 못 했을 말이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돈이 아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목수는 두 시간 만에 내가 사흘을 매달려도 못 만들었을 선반을 완성했다. 비용은 15만 원이었다. 그게 현명한 위임이라는 걸, 나는 늦게 배웠다.
오늘도 방 안에서 무언가를 고치려는 당신에게
그 시절의 나처럼, 지금 좁은 방 안에서 뭔가를 바꾸고 싶어 검색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벽지가 들떠 있거나, 형광등이 깜빡이거나, 문 틈새로 바람이 새어드는 그 방에서.
어쩌면 방을 고치고 싶은 건지, 지금 이 상황 자체를 바꾸고 싶은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를 수 있다. 그 마음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둘 다이어도 괜찮다.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소나기에 벽지가 젖은 날, 어설프게 시작한 그 도배 작업이 결국 나에게 ‘내 손으로 공간을 만든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가르쳐줬다. 삐뚤어진 마감선과 기포 자국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 방이 조금은 내 방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결국 남는 것은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해봤다는 것, 그리고 다음엔 조금 더 잘할 수 있다는 것. 그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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